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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향한 숨구멍

권선징악, 변하지 않는 법이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초등학교 도덕책은 참 쉽다. 도덕시험은 그래서 그저 먹기다. 참과 거짓, 바름과 틀림은 분명했다. 거짓말하지 않기, 자기 할 일 스스로 하기,  규칙 잘 지키기, 상식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왜 이런 과목을 배우고 시험까지 치는 이유를 몰랐다. 늘 100점 아니면 90점을 받았다.

 

 도덕은 철들면서 어려워졌다. 도덕은 개인의 옮고 그름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요구 되는 행복 평등 자유라는 도덕적 규칙들이 있다. 그래도 하나의 규칙은 변하지 않았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우리가 읽었던 흥부전의 놀부도, 춘향전의 변사또도 벌을 받았다. 악행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받아야 한다. 

 

[출처:  naver 이미지에서 가져옴]

 

 대학교 때도 도덕을 배웠다. 철학으로 이름이 변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도덕이다. 분명히 도덕이었는데 너무 달랐다. 개인은 노력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늘 정답은 아니다. 뉴스 신문 방송 책 내용은 의심 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철학은 우리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라고 말했다. 

 

 대학교 도덕책에서는 새로운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라는 단어다. 정치란 단순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치의 핵심은 ‘우리가 함께 만든 행복의 빵덩이를 공평하는 나누는 활동’이었다. 정치는 개인의 삶들을 결정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결정하는 마법의 도구다. 정치 수준이 우리가 누리는 권리와 의무, 자유와 평등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스무 살이 넘어서 배웠다.  

 

 정치에도 권선징악이 있다고 도덕책에 적혀 있다. 단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와 언론과 법이 자기 역할을 할 때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이 대중의 의견이 아니라 소수 권력자의 더러운 입을 대신하는 순간, 법치의 준엄함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고 권력의 품에서 분칠한 애첩이 되는 순간, 민주주주는 민주를 가장한 폭정이 된다. ‘기레기와 권력의 시녀’라는 말들이 오간 최근 우리 사회 모습은 정치에서 권선징악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최근 언론을 통해서 ‘최순실’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배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최순실과 대통령’라는 단어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제일 힘 샌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꼭두각시 대통령’이라는 말 앞에서 당혹스럽다. ‘국민에게 위임 받은 정치 권력이 치명적으로 오염되었다’라는 오명은 역사 속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사진: 한겨례 이미지에서 가져옴}

 

 사법부와 언론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묻고 싶다. 국민에게 위임 받은 정치 권력이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파와 보스에게 충성한 댓가, 기레기로 언론의 맨얼굴을 채운 결과, 세월호가 침몰한 까닭도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못하는 공권력, 수심 50m내외의 세월호도 끌어 올지 못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이 지금 모습을 만든 것이다.


  도덕책에서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쉬운 부분이 있다. ‘북한은 나쁜 놈’이라는 내용이다. 북한의 정치권력은 분명 나쁜 사람들이다. 슬픈 것은 북한 정치권력 속에 살아가는 동포들도 점점 멀어지고 남이 되고 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터지는 롯또 복권처럼 변질 되었다. 준비 되지 않은 통일의 혼란과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도 체면도 없는 말이다.

 

  언론과 법을 장악한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폭정이고 독재이다.  우리 사회가 ‘독재와 폭정’의 시대라고 누구도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권선징악’의 신념을 포기 할 수 없다. 포기하는 순간 ‘독재와 폭정’의 시대가 된다. 욕심 많은 흥부도 벌을 받았다. 권력을 잘못 사용한 변사또도 벌을 받았다. 이게 권선징악이다.

 

 대한민국 2016년 10월 말의 모습은 초등학교 도덕책 내용 같다. ‘최순실과 대통령’이라는 소설 같은 현실이 우리 눈앞에 있다. 모두 줄거리를 알고 있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을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해 달라고 할까? 이야기 결말이 궁금할 뿐이다.

 

 초등학교 때 백점자리 도덕 시험을 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분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도덕문제다. 이것을 틀린다면 염치와 체면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된다. 언론과 사법부 그리고 정치 집단들이 새 시험지를 받았다. 도덕시험 문제다. 상식적인 문제다. 쉬운 문제다. 모두가 백점짜리 답을 원하고 알고 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이글은 '거제뉴스광장'에 칼럼으로 제공했습니다.

http://www.gjnewsplaza.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