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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향한 숨구멍

우포에서 만난 미하일

우포의 초록빛이 익고 있다.

전국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선생님들이 우포에 모였다.

같은 곳을 보고 똑같은 신념과 가치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다.

같은 색은 모이면 짙어지고 깊어지는데 우린 쉽게 섞이고 편안해 진다.

 

 

  

새벽 우포를 함께 걸었다.

아침 이슬과 어제 잠깐 내린 단비가 옷 사이를 스며들었지만 좋았다.

아침 나절에 날개돋이를 하는 밀잠자리붙이를 만나고 새벽길을 나선 달팽이와 눈인사도 했다.

 

 

 

 

 

 

우포에는 식물과 새들만 있는 게 아니다.

우포에는 사람이 있다.

우포에 있는 첫 번째 사람은 왜가리 이인식선생님이다.

습지와 생명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평생을 살아 오셨고

우포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감내해 왔다.

우포에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우포를 위한 유일한 삶을 선택하신 분이다.

 

 

 

 

 

왜가리선생님은 사람들 눈에 평범해 보이는 우포 곳곳을 아주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생명을 불어 넣었다.

기도하는 나무, 우포 속 작은 연못, 버들나무와 그림자, 나무에 올라서 앉기

우포 곳곳은 그분이 불어 넣은 새로운 의미와 가치들로 가득차 있고 이곳에서 돋아난 초록빛들로 사람들은 물들기 시작했다. 뚝뚝 떨어진 초록빛들이 깊어 지도 번지는 일도 그 분이 해 오신 일이다. 따뜻한 냉철함과 송곳 같은 열정이 없다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따뜻한 차를 내 주셨다. 봄 맛이 빼곡히 차잎에 꼬여 잘 숙성된 황차다.

차를 마시면서 거대한 새로운 우포와 마주했다.

텅빈 농기계 보관소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한 구석에 그 분이 기거하는 단촐한 공간이 있다.

성철스님 사는 모습 같아요

선생님이 생활하는 곳을 보고 같이 온 선생님이 한 말이다.

 

 

 

 

책을 채우지 못한 책꽂이와 식물 표본장,

이곳이 무엇을 하려고 준비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연우포 도서관’, 선생님이 우포에 마지막으로 불어 넣고 있는 가치다.

내가 본 자연우포 도서관 첫 모습은 거대한 원시 우포늪과 닮았다.

우포의 가치를 처음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세상이 보냈던 엄층난 벽과 두려움, 냉소와 차가운 시선,

자연우포도서관은 처음 우포의 가치를 말했던 30여년전 모습과 닮았다.

 

 

 

 

 

 

 

천사 미하일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산모 목숨을 거두라는 하느님 명령을 어기고 쫓겨난 천사다.

구두수선공으로 인간의 삶을 살다가 3가지를 발견했다.

첫 번째 인간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두 번째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으며

세 번째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세가지 사실을 발견하고 미하일은 다시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소설 속 이야기와 왜가리선생님은 닮은 곳이 많다.

왜가리선생님이 선택한 삶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 시대와 우리사회의 상황들이 그분을 거대한 원시 우포로 내 몰았고

이제 텅 빈 농기계 창고 아래서 자연우포도서관을 꿈꾸게 만들었다.

세상을 향한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까지 약 3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농기계 창고가 넓은 자연우포도서관이 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가리 이인식 선생님, 천사 미하일

뚝뚝 떨어지는 초록빛 물감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사람과 가죽 신발을 수선했던 천사 미하일.

선생님은 천사가 풀어야 했던 마지막 답도 분명히 알고 있다.

선생님이 상상으로 짓고 있는 우포도서관 모습은 마하일이 풀고 싶었던 마지막 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