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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향한 숨구멍

돌봄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야 한다

SNS 곳곳에 돌봄전담사 파업에 대한 생각들이 달렸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주장이 정의롭고 공정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달았다. ‘정의와 공정은 우리 시대가  선택한 가치다.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지 않으면 우리는 '갑질'이라는 시대 용어로 한 없이 비판한다.

 

돌봄은 사회복지의 문제다. 교육 정책이 아니다.

돌봄의 업무는 지자체로 옮겨가는 게 옳다. 왜냐하면 돌봄의 질은 우리 사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사회는 더 높고 더 깊은 돌봄의 질을 요구 한다. 돌봄 기능과 역할, 질적 팽창과 발전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학교 한 칸에 아이들을 관리하는 시대는 끝났다. 자치 단체가 얼마의 돈을 지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재정적 지원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SNS에 올라온 글에는 새로운 시각도 눈길을 끈다. 교장 교감선생님들이 돌봄전담사들의 빈 자리를 메웠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우리 학교도 파업이 예고되었을 때 돌봄 교실을 운영 방식에 대해 의논을 했다. 대체 인력 투입은 노동법 위반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법들은 곳곳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장 교감이 돌봄 전담사를 대신해 돌봄을 운영했다. 이런 선택은 현장의 관리자들이 사용자라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교장 교감의 직위가 사용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생활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과 가을색으로 애벌레 놀이를 했다

나도 돌봄 전담사를 대신해  20여 명 아이들과 한나절을 보냈다. 난 현직 교감이다. 아이들과 가을 빛깔과 함께 놀기 위해 애벌레 놀이를 준비했다. 돌봄에 참여한 아이들은 12시부터 4시까지 5타임에 걸쳐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발열 체크 및 건강 상태 확인-야외놀이- 간식- 자유놀이-야외활동 2-실내 정리 활동으로 구성했다.

 

애벌레는 날개를  달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애벌레는 세상에 마주하는 첫 번째 단계다. 날개를 달기 위해서 열심히 먹고 성장한다. 천적을 피해 나뭇잎 뒤에 숨어야 하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죽은 측 움직임도 멈춘다. 자유롭게 날기 위한 곤충의 날개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 손이 흙손이 되었다. 흙을 만지고 나뭇잎의 빛깔을 찾아서 분주하다. 같이 모양을 만들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몰입한다. 몰입은 늘 새로운 창조를 만든다.

 

자유놀이 시간에 아이들은 제각각 놀았다. 책 읽은 친구, 색종이 접는 친구, 친구와 어울려 도미노 놀이하는 친구, 카드놀이하는 친구, 돌봄의 공간은 아이들의 편안한 놀이터다. 제각각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돌봄은 학교 수업과 다른 영역이다

돌봄은 프로그램은 분명 일반 수업 구조와 완벽하게 달랐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관리를 해줄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방과후 수업과도 교실 수업과도 다르다. 개인 일정이 변하면 언제라도 오고 가는 게 자유롭다.

 

돌봄 지원을 원하는 가정이라면 돌봄은 가장 쉽고 안전하게 편안하게 아이들을 받아 안아주고 그 시간을 지원해 주는 공간되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쉽게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돌봄의 구조는 더 변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것은 학교에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학교는 모든 활동들이 촘촘하게 연결된 거미줄과 닮았다. 이 거미줄에 돌봄은 융통성 없고 너무 큰 무게로 학교 전체의 교육 활동과 교육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돌봄, 날개돋이 공포를 극복하자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처럼 돌봄은 명확한 사회적 영역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 운영주체는 지방자치단체다.  시대적 사회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과 노동의 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돌봄의 질적 개선에 따른 돌봄 전담사의 처우 개선은 우리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몫이다.

우리 사회 돌봄운영은 이제 세상에 나와 몇 번의 탈피를 한 중간 크기의 애벌레 정도다.  날개를 달고 날기에 학교는 비좁다. 애벌레의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날개 돋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